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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19 20:16 수정 : 2010.10.19 20:16

함석진 기자

요즘 손이 가는 책이 하나 있다. 의사였던 말로 모건이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원주민 부족과 함께 대륙의 사막을 건너며 보낸 석 달의 기록인 <무탄트 메시지>다. 5만년을 살아온 그들의 땅에 어느날 흰 얼굴의 사람들이 밀고 들어와 땅을 차지했다. 숲을 불태우고 강을 더럽히고 사람과 동물들을 죽였다. 원주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에게 외지인은 원래 인간과 다른 돌연변이(무탄트)로 보였다.

그들은 놀이를 즐기지만 시합은 하지 않았다. 지는 사람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이 깊은 그들은 말도 많이 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노래와 축제, 치료를 위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막을 건너는 동굴 성지로의 긴 여정은 땅을 아프게 한 그들을 대신한 그들만의 속죄 방식이었다. 그리고 아기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 언제부턴가 땅은 뜨거워지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동식물이 줄어 먹을 게 없어졌다. 후손들에게 고통을 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영혼은 본디 맑지만, 그것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자발적 멸종을 알리고 싶었다고 지은이는 썼다.

현실로 돌아오면 책 속의 이야기는 아득해진다. 어디 한 곳 기댈 데가 없다. 이웃 도우라는 성금까지 유용하는 세상이 슬프다. 나 살자고 남 죽이고, 돈 빼돌리고 뒤 봐주고. 무심한 공식처럼 사람들은 기어이 그런 길을 간다. 에이브러햄 머스트(1885~1967)는 평화를 위해 생을 살았다. 그는 베트남전쟁 당시 백악관 앞에서 밤마다 촛불을 들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한 방송 기자가 물었다. “혼자서 이런다고 세상이 변하고 나라 정책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겠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퀴퀴한 영혼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알량한 저항조차 버겁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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