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0.24 21:42
수정 : 2010.10.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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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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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엔피아르>(NPR)가 “비행기에 이슬람 복장을 한 승객이 타고 있으면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는 발언을 한 뉴스해설가를 해고한 것을 놓고 미국 사회가 떠들썩하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지사를 비롯한 우파 인사들은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이 방송에 대한 의회의 재정지원 중단 결정을 촉구하는 등 집중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다음달 초에 있을 중간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일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도 촉발했다. 장본인인 완 윌리엄스 스스로 “나는 정치적 올바름과 이념적 독선이 개입된 전쟁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흔히 피시(PC)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는 ‘정치적 올바름’은 잘 알려져 있듯이 말의 표현이나 용어 사용에서 인종·민족·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고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 운동은 언어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편견을 드러내는 언어의 사용 자체가 불평등과 불의를 고착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용어를 다듬고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지상파 방송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동성애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화제가 됐던 <에스비에스>(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극중 동성 커플의 성당 언약식 장면을 끝내 방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동성애를 최소한 이성적 논리나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진한 마무리는 성적 소수자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편견의 벽이 아직도 높고 완강함을 잘 보여준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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