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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8 20:38 수정 : 2010.11.08 20:38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낙동강 700리 물길 중 제1경이라는 경천대(擎天臺)의 원래 이름은 자천대(自天臺)였다.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것처럼 경치가 빼어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조선 중기 학자로 병자호란 뒤 자천대에 은거했던 우담 채득기가 자천대에 ‘경천대비’를 세운 뒤 경천대로 불리게 되었다. 채득기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봉림대군 등을 시봉하기 위해 1638년 겨울 심양으로 떠나면서 지은 ‘봉산곡’(일명 천대별곡)이란 가사에서 경천대의 절경을 노래했다.

“… 고운 모래 흰 바위가 굽이굽이 절경이로다/ 그중에 좋은 것이 무엇이 더 나으랴/ 기암이 물을 굽이치며 천백척 솟아올라/ 구름 사이로 우뚝 서서 높은 하늘 떠받치니/ 귀부(鬼斧)로 베었는가 화공의 솜씨런가/ 자천대란 네 이름이 과연 헛되게 얻은 게 아니로다 …” 채득기는 “문장이 아무리 훌륭한들 누가 이를 다 시로 써 낼 것이며, 화공이 신묘한들 어찌 다 붓으로 그릴 것인가”라며 경천대의 절경을 극찬했다.

경천대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경천대 앞 강 건너에 있는 곱고 깨끗한 모래사장이다. 낙동강이 상주시 회상 들판을 휘감아 돌면서 만들어 놓은 은빛 백사장은 경천대와 짝을 지으며 ‘낙동강 제1경’을 이루었다. 그 백사장이 4대강 사업으로 지난달부터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고운 자태를 자랑하며 경천대를 품 안에 포근하게 품고 있던 모래벌판이 하루하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과 시민작가 20여명이 참여하는 ‘경천대 사진전’이 이번 주말까지 서울 조계사에서 열리고 있다.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 경천대 앞 백사장의 절경과 경천대 주변 비경을 담은 사진 30여점이 전시된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에 난도질당하는 백사장의 모습도 담겨 있다. 수만년 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그 비경들을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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