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17 19:57
수정 : 2010.11.1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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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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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여러 공장에서 독성물질이 퍼져 식수가 오염되는 일이 터졌다. 당시 페어차일드반도체 공장 근처인 새너제이에 살던 주부 로레인 로스는 딸을 임신한 상태였다. 딸이 태어나서부터 심장질환에 시달리자, 로스는 수질 오염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곧 이웃을 찾아다니며 질병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 신문 기자가 가세하면서 아이비엠과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 나온 독성물질이 몇 마일에 걸친 지하수를 오염시켰다는 게 드러난다. 이를 계기로 82년에 ‘실리콘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이라는 단체가 결성된다.
전자산업의 위험을 알리는 데는 또다른 여성의 노력도 크게 작용했다. 1970년대부터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한 노동 전문 변호사이자 ‘샌타클라라 노동안전보건센터’ 공동 설립자인 어맨다 호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30년 이상 전자업계 노동자들의 소송을 맡으면서 독성물질에 관한 여러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아이비엠과의 소송은 반도체공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밖에 타이의 산업보건 전문의 오라빤 메따딜록꾼, 스코틀랜드 반도체 노동자 헬렌 클라크 등도 전자산업이 어떻게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지 알리는 데 공을 세운 여성들이다.(<챌린징 더 칩: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참고)
생산직 가운데 여성이 많은 전자산업의 특성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독성물질 문제를 세상에 알린 이들에는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같은 여성 노동자들과 공유정옥·이정란씨 등 ‘반올림’의 여성 활동가들이 포함돼 있다.
전국금속노조가 최근 환경운동가들과 손잡고 자동차업계에서 쓰는 독성물질 150여건을 찾아냄으로써, 한국에서 일터의 독성물질과의 싸움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됐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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