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28 21:36
수정 : 2010.11.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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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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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때는 선사시대인 신석기시대로 추정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0년 전후에 연평도에 대한 지표조사 등을 통해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그리고 주변의 당도와 모이도 등에서 패총(조개무지) 유적을 확인했다. 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패총은 연평도 까치산 동남쪽에 집중 분포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북서풍을 막아주는 까치산 동남쪽 자락에서 굴과 조개, 물고기 등을 잡으며 평화롭게 살았음을 보여준다. 2003년에는 까치산 패총 발굴조사 과정에서 71점의 개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BC) 4000년 전후의 뼈로 확인됐다. 무려 6000여년 전부터 개들이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평도가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에서다. 이 책에는 선종 10년(1093년) 연평도 순검군이 송나라인과 왜인이 타고 있던 해적선 1척을 나포했다는 기록 등이 나온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 해주목조)에는 “석수어(石首魚·조기)가 해주목 남쪽에 있는 연평에서 나오는데 춘하지교(春夏之交·4~5월께)에 각지의 어선들이 모여 그물로 고기를 잡았으며, 관청은 그에 대한 세금을 거두어 나라 재정으로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연평도가 남북 간 화약고로 변한 건 6·25 전쟁 이후부터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해상 충돌이 있은 뒤 급기야 지난주에는 북한 포격으로 불바다가 돼버렸다. 수천년 전부터 터 잡고 살던 주민들은 모두 떠나고, 주인 잃은 개들만 굶주린 채 거리를 헤맨다. 미국 핵항공모함까지 동원된 대규모 서해 한-미 연합훈련으로 연평도는 전쟁 직전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연평도의 시계가 선사시대만도 못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평화롭던 연평도를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는가.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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