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30 19:59
수정 : 2010.11.3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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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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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전함에 항공기를 처음 탑재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이다. 영국 해군은 1913년 순양함에 항공기를 탑재함으로써 항공모함 운용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해군 함재기에 의한 최초의 지상 공격은 일본이 했다. 1914년 9월 와카미야호에서 발진한 함재기가 중국 칭다오 인근의 독일 통신시설을 폭격한 것이다. 영국 함재기도 1914년 12월 북해 연안의 독일 비행선 기지를 공습했다.
하지만 당시 함정을 항공모함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수송선 위에 평평한 지붕을 씌우고 그 위에서 항공기를 발진시키는 방식이었다. 최초의 항공모함은 1918년 영국이 갑판 자체를 평평하게 개조해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만든 아거스호다. 이때부터 현대적인 항모 건조 경쟁이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경쟁을 불붙인 계기는 1922년 워싱턴에서 열린 해군 군축회담이었다. 당시 회담은 전함 배수량 제한에 초점을 맞췄고, 상대적으로 항공모함에 대한 규제는 느슨했다. 이후 열강들은 전함을 항모로 바꿔 건조하기 시작했다.
1925년 진수한 미국의 렉싱턴호, 1927년 진수된 일본의 아카기호 등이 그런 사례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육군과 공군의 견제 등으로 2차대전 종전 때까지 항모를 보유하지 못했다. 반면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 항모는 26척, 영국 항모는 13척으로 늘어났다. 해군력의 관점에서 보면 2차대전은 애초부터 독일에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2차대전 말 제트기 개발과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은 항공모함의 초대형화를 불러왔다. 제트기 이착륙을 위해 대형화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항모는 해군 전력의 중심을 이루게 됐다. 미군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까지 위협하는 엄청난 전력을 고려할 때 동북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느낌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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