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현호 논설위원
|
사진에서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남녀는 느슨하게 풀려 있는 옷차림(개방성)인 반면,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은 꽉 조인 옷차림(폐쇄성)이다. 연인들은 허리를 젖히거나 상체를 기울였지만(유연성), 행인들은 차렷 자세(경직성)에 가깝다. 왼쪽의 시청 건물은 일하는 공간(무거움)으로, 강 안개에 희미한 사진 오른쪽의 나무 그림자(가벼움)와 대비된다. 구도에서도 연인들과 주변 인물·풍경은 중심과 주변, 집중과 평행, 상승과 하강으로 조형적 대조를 이룬다. 의미를 모아보면 한쪽은 활기를, 다른 쪽은 무기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연인의 입맞춤은 규격화된 일상과 자유를 갈망하는 삶이 충돌하는 극적인 장면이 된다.(김기국, <사진의 기호학적 분석>)
그런 식으로 뜯어보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에 사는 아일랜드인 베리 디바인(30)에게 마르틴 프랑크의 1993년 사진 ‘더블린’은 섬광처럼 날아온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교외의 불탄 승용차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바로 그 시절 그의 모습이었다. 몇 살 위 형들이 남의 차를 훔쳐 놀다가 들판에서 불태워버리면 어린 동생들은 그렇게 버려진 차 위에서 놀았다.
롤랑 바르트는 라틴어로 연구를 뜻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점을 뜻하는 ‘푼크툼’(punctum)을 사진을 받아들이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언어로 공유할 수 있는 일반화된 상징이 스투디움이라면, 갑자기 화살처럼 날아와 찌르는 듯한 개인적인 울림이 푼크툼이다. 곧, ‘분석’과 ‘필’이겠다. 내겐 어떤 사진이 그럴까.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에 그런 사진들이 있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