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23 18:57
수정 : 2011.01.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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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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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란 말처럼 속수무책인 말은 없다. 그것은 그냥 막막함이고 깜깜함이다. 위로도 절망의 금 건너편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절망의 바닥에서도 꽃은 핀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잠수종과 나비’란 영화가 있다. 프랑스 패션잡지 <엘> 편집장 출신인 장도미니크 보비의 실제 이야기다. 그는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온몸이 마비됐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남아 있는 그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눈 깜빡임으로 알파벳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만든 단어로 바깥세상과 대화했다. 단어 하나에 3분이 걸렸고, 반나절 이야기도 종이 반쪽을 채우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열다섯달 동안 20만번 눈을 깜빡이면서 130쪽의 책을 남겼다. 그리고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법마저 빼앗긴 막다른 길. 나에겐 나비처럼 자유로운 세 가지나 있었다. 눈꺼풀 그리고 상상과 기억. 난 그것으로 충분했다.”
22일 눈을 감은 소설가 박완서는 남편을 잃은 지 석달 만에 스물여섯 아들을 잃었다. 자식을 묻는 어미 맘은 어떤 것일까?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리고 신과의 대적을 선택했던 절망의 끝.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번 고쳐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한 말씀만 하소서>, 2004년) 거기까지 가서야 그는 신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가 우리에게 선물로 남긴 작품들은 그 시간이 관통한 고통과 화해의 궤적이리라. “막막하다고요? 아들 먼저 보낸 에미도 꾸역꾸역 목구멍에 밥 넘기니 살아집디다. 힘내세요.”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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