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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06 20:59 수정 : 2011.02.07 10:56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이집트 시위가 2주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내각을 교체하고, 집권당 지도부가 줄줄이 사임했지만, 정작 국민들로부터 즉각 사임을 요구받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은 꿈적도 않는다. 자신이 사임한 뒤 이집트가 혼란에 빠질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란다. 그는 타흐리르 광장을 메운 시위대의 주장엔 신경쓰지 않는다며 “지금 나의 관심은 오로지 내 나라, 이집트뿐”이라고 했다.

거리를 메운 국민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만이 이집트를 지킬 수 있다는 그의 독선에 찬 말을 듣다 보면 1979년 비명에 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1972년 이른바 ‘10월유신’을 단행한 뒤 ‘체육관 간접선거’를 통해 종신 대통령의 길을 걷던 그도 무바라크와 마찬가지로 긴급조치에 의존하지 않곤 통치할 수 없었다. 언론은 재갈을 물렸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철저히 억압했다. 대통령에 대한 사소한 비판조차 긴급조치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단됐다.

그러나 그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목숨을 건 저항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권한 정지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부산과 마산을 뒤흔들었다. ‘부마항쟁’으로 촉발된 시위의 물결은 전국으로 확산돼 갔지만, 박 전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도 무바라크처럼 시위대들의 ‘독재 타도’ 외침을 들을 귀를 갖지 못했다. 자신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독선이 깊었던 탓이다. 결국 그는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독선이 빚은 비참한 말로였다.

물론 무바라크와 박정희, 이집트와 한국은 다르다. 하지만 광장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다간 무바라크 역시 다른 독재자들의 비극적 행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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