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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유용한 독재자 / 김종구 |
이집트 민주화 시위 사태로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이율배반적 태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카이로는 공교롭게도 2009년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랍 세계를 향해 연설을 했던 곳이다. “표현의 자유, 정직한 정부, 선택의 자유….” 이런 말은 지금 카이로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호기롭게 했던 연설 내용이다. 하지만 정작 이집트에서 민주화 시위가 불붙자 오바마 행정부는 계속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부편집인 조슈아 키팅은 이를 ‘유용한 독재자’(useful autocrat)에 의존하는 미국의 고질적인 외교정책 탓이라고 설명한다. 중동지역에서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요르단 등이 미국으로서는 쓸모가 많은 독재국가에 해당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란(팔레비), 자이르(모부투), 남베트남(응오딘지엠) 등 미국이 후원한 독재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키팅은 “미국이 우호 관계를 맺은 독재국가의 가장 극명한 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독재국가들이 계속 무너지는데도 미국은 매번 갈팡질팡 허둥댄다는 점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 수십년간 민주화 봉기가 일어난 나라가 100곳이 넘고 85개국 이상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무너졌는데도 미국은 언제나 그런 사태가 처음인 것처럼 반응한다”고 개탄했다. 밑으로부터 분출하는 시민들의 욕구에 대한 과소평가, 친하게 지내온 독재자를 위로하고 싶은 본능 탓에 늘 상황 파악이 한발 늦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민주화 시위 성공 이후 미국의 처지가 더욱 옹색해지는 것도 이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키팅은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누가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무기를 공급해왔는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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