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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침출수 / 정남기 |
질병의 역사는 상하수도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느 시대나 상하수도 시설이 형편없었던 곳에선 많은 질병이 창궐했다. 고대에 상하수도가 가장 잘 돼 있던 나라는 로마였다. 전성기인 2세기 무렵엔 로마 시내에 하루 수만톤의 물이 공급됐다. 그 물은 곳곳에 설치된 공공저수조로 공급됐고, 일반인들은 그 물을 길어다 썼다. 모든 가구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정교한 하수처리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중세는 종교뿐 아니라 위생 면에서도 암흑시대였다.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어 대변과 소변은 바로 시궁창에 버려졌고, 이것이 하천과 합류됐다. 수세식 변기는 16세기 말 영국에서 개발됐지만 일반인에게 도입된 건 19세기 후반이었다. 쓰레기 처리도 엉망이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쓰레기들은 길거리에 그냥 버려졌다. 이 때문에 곳곳에 쥐들이 들끓었다. 이들은 인간에게 질병을 옮기는 치명적인 수단이 됐다.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한 페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구제역은 인간에겐 전염되지 않는 동물 전염병이다. 그러나 수백만마리의 가축이 매몰되면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전국 곳곳을 오염시키고 있다. 땅속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지표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정부는 완벽한 처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김포 수도권매립지의 사례를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수도권매립지는 1992년 매립을 시작한 이래 10년 가까이 갖은 악취와 침출수 등에 시달리다 2000년대 들어서야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런데도 정부의 침출수 대책은 중구난방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비료화 발언이다. 침출수도 유기물이기 때문에 퇴비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병든 가축도 단백질이기 때문에 익혀 먹으면 상관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구제역 괴담에나 딱 들어맞는 수준의 말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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