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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원전 집시 / 신기섭 |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수습을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이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얼굴 없는 영웅’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하청업체 노동자라고 한다. 원전 사고 처리에까지 비정규직이 동원되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일본 비정규직 원전 노동자의 역사를 알면 새삼스러울 게 없다.
원전을 떠돌며 일한다고 해서 ‘원전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1960년대 일본에 원전이 등장한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위험한 업무를 도맡아 왔다. 감춰져 있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다. 백혈병이나 암에 걸리는 원전 근무자 문제가 논란이 되자 언론인 등의 실태 고발이 이어진 것이다. 호리에 구니오라는 언론인은 직접 원전에 들어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 뒤 1979년 <원전 집시>라는 책을 냈다. 모리에 신이라는 하청업체 노동자도 같은 해에 자신의 체험담 <원자로 방사능 피해자의 일기>를 내놨다. 이런 출판물들은 원전에 관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빨래나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주목할 사실 하나는, 원전을 일본에 수출한 미국 기업이 당시에 파견한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흑인 하청노동자라는 점이다.
그 이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줄지 않았다. 쓰다주쿠대학 미우라 나가미쓰 교수가 2000년에 쓴 ‘원전 집시, 일본 원전 노동력의 숨은 비극’을 보면, 1999년 전체 원전 노동자 6만4922명 가운데 90%가 하청업체 소속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생계가 어려운 농부, 어부, 일용직들이라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의 글, http://timshorrock.com/?p=1254 참고)
원전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가장 힘없는 이들이 방사능에도 가장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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