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8 21:21
수정 : 2011.03.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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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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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문에 휘말린 유명인사가 걷는 공통의 행로가 있다. 우선 대중의 눈을 피해 은둔한다.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나면 고백성 기자회견을 한다. 그리고 자서전을 쓴다.’ 미국 언론·출판계에서 정설로 굳어진 이야기다. 이에 따른 관련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당사자와의 독점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한 방송사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쪽 동네에서는 이를 ‘부킹 전쟁’(booking war)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 십수년 동안 미국 방송계에서 벌어진 최고의 격전으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상대역인 모니카 르윈스키 모시기 전쟁이 꼽힌다. 최종 승리자는 <에이비시>(ABC) 방송의 앵커우먼 바버라 월터스였다. 르윈스키는 그 대가로 인터뷰 테이프를 다른 방송사에 제공할 권리를 넘겨받아 1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그는 여세를 몰아 전기도 출판했고, 나중에는 체중관리 서비스업체인 제니 크레이그사 광고모델,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진출했다.
최근 장안의 화제를 모은 신정아씨의 자서전 출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스캔들 산업(scandal business)이 본격화한 게 아닌가 싶다. 차이점이라면 르윈스키는 이 분야의 선진국 국민답게 책을 전문 작가에게 맡긴 반면 신씨는 대필 논쟁을 무릅쓰고서도 자서전 형식을 빌렸다는 점이다. 르윈스키의 전기를 쓴 앤드루 모턴은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가수 마돈나, 영화배우 톰 크루즈 등의 전기를 쓴 유명 작가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치밀한 장치 면에서는 신씨 자서전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과거 스캔들의 뒷이야기 차원을 넘어 새로운 스캔들을 확대재생산시킨 점이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것도 교묘하다. 책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종류의 시장이 번창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씁쓸하지만 세태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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