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18 19:53
수정 : 2011.04.1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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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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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 몸무게 380g. 혈액량은 활명수 반병 정도인 20㏄. 허파꽈리가 덜 자라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원순·장윤실 교수팀이 이런 초극소 미숙아(이른둥이)를 살려냈다. 아홉달 만에 체중은 3.5㎏으로 불어났고 별문제가 없어 퇴원시켰다고 한다. 이른둥이는 몸무게 2.5㎏ 미만이고 37주 전에 태어난 신생아로 엄마 품이 아니라 인큐베이터에서 세상에 적응한다.
몸무게 400g 미만의 초극소 미숙아는 폐 조직 발달이 미숙해 호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대 의학에서도 생존 한계로 여겨졌다. 의료진의 개가다.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됐지만 기적의 주역은 이른둥이 은식이다. 온몸을 이용해 숨을 쉬면서 어떻게든 살려고 애썼다고 한다. 사실은 태어난 것 자체가 끈질긴 생명력의 승리다. 은식이는 모체의 임신 중독증으로 25주 만에 출생했다.
태아에게 모체는 존재의 근원이자 든든한 보호자이지만 태초의 안락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태아와 모체는 임신 초반부터 서로에게 한치 양보 없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시작한다. 모체는 태아를 위해 생존 장소와 에너지를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태아의 생존을 위협한다. 태아가 절반의 동질성과 절반의 이질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의 방어전략으로 태아는 선택적 투과성이 있는 태반을 만든다. 나아가 더 많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하고 태아 세포들은 자궁벽을 뚫고 침입해 혈류량을 조절할 수 없게 만든다. 임신성 당뇨와 임신 중독증의 원인이다. 380g에 지나지 않지만 투혼 덩어리였던 것이다. 은식이의 탄생과 생존은 카이스트대에서 잇따라 일어난 자살을 돌아보게 만든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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