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01 19:49
수정 : 2011.05.0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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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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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로 엄격히 정의한다면 미국이 지구상 최초의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다.”
현대 경영학을 창시했다는 피터 드러커는 1976년 <보이지 않는 혁명-연금기금주의는 어떻게 미국에 왔는가>라는 책에서 연기금이 상장기업의 소유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70년대 초부터 시행된 미국 기업과 공공기관의 퇴직연금제도에 주목한 그는 80년대 중반께 연기금이 미국 상장주식의 70%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농업과 정부 부문을 제외하고 연금자본주의가 선진국에 보편적인 소유 양식이 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는 연기금이 대부분 노동자의 돈인 만큼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셈이라며 기술적으로 연금자본주의가 아닌 연금사회주의라고 정의했다.
연기금을 포함한 미국 기관투자가의 상장사 지분은 55% 선으로 드러커의 전망에는 못 미치지만 큰 추세는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미국 노동자들의 쌈짓돈이 국민경제의 구조와 성격을 좌우할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기금의 주인인 노동자들은 일치된 소리를 내지 못했고 이들의 뭉칫돈은 미국 자본시장의 덩치를 키우고 각국을 금융세계화 시키는 동력으로 쓰였다. 그 와중에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와 노동 여건의 악화를 감수해야 했다. 노동자들의 돈이 수익률 제고를 지상가치로 여기는 자본시장에 흡수된 뒤 노동자를 핍박하는 데 쓰였던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강화하겠다고 하자 연금사회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연기금을 통해 노동자들이 기업을 지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며 주식회사 제도와 자본주의의 유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면 사기업이 국유화한다는 주장도 연금사회주의만큼이나 공상적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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