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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일라이릴리상과 호암상 / 이근영 |
1970년 4월30일 미국 생명과학자 존 벡위드(76·하버드의대 교수)는 미생물학회가 주는 ‘일라이릴리상’을 받으러 보스턴 연차총회장에 들어섰다. 다국적 제약회사 일라이릴리의 후원으로 1936년 제정된 이 상은 미생물학과 면역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35살(지금은 45살) 미만의 과학자에게 주어진다. 벡위드는 1969년 대장균에서 유전자를 처음 분리해내는 업적을 이뤘다. 1000달러의 상금을 받은 벡위드는 진행자에게 몇 마디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그는 상금을 흑표범당(블랙팬서)의 보스턴 무료병원 지원과 뉴욕에서 체포된 흑표범당 당원들의 변호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충격을 받은 관중들의 헐떡임과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드문드문 박수갈채도 나왔다.”(벡위드 지음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흑표범당은 1966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결성돼 ‘아이들에게 아침밥 먹여 학교 보내기’ 등을 벌인 흑인 민권운동단체다. 당원들이 검은 안경을 쓰고 총을 들고 다니며 ‘무장한 흑인’ 이미지를 전파하자 연방수사국(FBI)은 ‘국가안보에 제일의 위협’이라며 탄압에 나섰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 동안 이 분야(유전자 조작)에 대해 생각하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과학자들에게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유혹입니다. 우리와 우리 연구가 사용하는 방식 때문에, 우리는 사회에 대해 특별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벡위드의 수상연설은 제약회사의 이기주의와 부도덕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지난주 제21회 호암상 시상식이 열렸다. 과학 등 5개 부문 수상자에게 각각 3억원의 상금과 메달이 주어졌다. 어느 수상자가 “상금 일부를 삼성전자 종사자들의 직업병 규명에 쓰겠다”고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분명 과욕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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