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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1 19:14 수정 : 2011.07.21 19:14

흔히 현모양처를 동양적 유교사상에 기반을 둔 전통적 여인상으로 여기지만 사실 조선시대에 현모양처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 양처(良妻)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것은 ‘좋은 아내’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비 등 천인이 아닌 양인 출신의 아내를 양처라고 불렀다. 중국도 비슷한데 사마천의 <사기>에 ‘가빈즉사양처’(家貧則思良妻: 집안이 가난해지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게 된다)는 글귀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양처라는 단어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현모양처란 말이 한국과 중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양처현모론이 등장하면서다. 문헌상 우리나라에 현모양처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06년 양규의숙(養閨義塾)이란 여학교의 설립 취지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현모양처, 현처양모, 양모현처 등이 섞여 쓰이다가 지금은 현처양모라는 용어로 정착됐다. 한·중·일 3국이 모두 말의 조합이나 순서가 조금씩 다른 점이 흥미롭다.

현모양처론은 남녀 역할에 대한 차별적 가치관이 깃들어 있는데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통치이데올로기 노릇까지 해온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좋은 아내의 조건도 시대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남편에 대한 ‘내조’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여전한 듯하다.

불법도청 관련 청문회에서 남편 루퍼트 머독을 봉변에서 지켜낸 웬디 덩 머독을 두고 “타이거 와이프”니 “슈퍼 와이프”니 하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의 활약으로 머독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호랑이 같은 아내(호처: 虎妻)가 새로운 유형의 양처로 우뚝 선 셈이다. 한국방송 도청 의혹에 대한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를 보노라니 차라리 청문회에서 이런 해프닝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하는 심정이 든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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