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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피동형 기자들 / 임종업 |
“… 달빛이 불안히도 붉습니다/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지붕 위에선/ 장례식에 몰려온 애도인파처럼/ 구름이 비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일순의 기대// 바깥에는 밤이 떨고 있습니다/ 지구는 회전을 멈춥니다/ … 초록의 당신이여/…/ 생명의 따스함에 넘치는 입술을/ 내 사랑에 빠진 입술에 겹쳐 주세요. …” 이란 여성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작품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다. 대개 문장의 주어가 사물이다. 끝 연에서 반복되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도 그렇다. 생경함이 되레 신선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교회노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번역체에다 피동형이 반복되어도 자연스럽다. 신-당신-나의 위계적 가치관이 바탕에 깔린 까닭이다.
“… 정부의 5·17 조처는 심상찮은 북괴의 동태와 전국적으로 확대된 소요사태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되며, 나아가서 이를 계기로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부정부패와 사회불안을 다스리려고 결심한 것으로 관측된다.”
1980년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불가피하다고 평가한 신문 사설의 일부다. 풀이, 관측하는 주체가 불분명한 피동형 문장이다. 유독 신문·방송에서만 쓰는 문체다. <피동형 기자들> 지은이 김지영씨는 권력을 정당화할 때, 당파성·지역성·이해관계를 숨기려 할 때, 추측성 보도를 할 때 기자들이 즐겨 쓴다면서 이러한 책임 회피성 문장은 1980년대 신군부의 언론검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유래야 어쨌든 아이러니다. 사실을 명료하고 책임 있게 보도해야 할 매스컴이 피동형 문장을 자주 쓴다는 게.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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