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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4 19:16 수정 : 2011.08.14 19:16

놀랍다. 시집을 교향악단 이름으로 삼다니. 괴테가 말년에 14세기 페르시아의 전설적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고 동양(아랍) 문화에 매료돼 썼다는 시들을 묶어 펴낸 시집이다. “솔직히 고백하자. 동양의 시인들은 서양 시인들보다 위대하다”는 내용도 있지만, 우열을 가리자는 게 아니다. 공연한 우월감, 공연한 천시를 반성하고, 동서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한 시집이다.

그런 ‘서동시집’을 차용한 이들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으로 유일무이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시민권자인 바렌보임, 분리하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학문과 몸으로 저항했던 팔레스타인 태생의 사이드. 이들이 음악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마음의 문부터 열자는 뜻으로 교향악단 창단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독일 바이마르에서 1999년 창단됐다. 2002년 스페인 세비야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4세기 동안 유대인과 무슬림이 공존했던 곳이다. 안달루시아 주정부와 이 지역 유지들의 지원으로 2004년엔 바렌보임-사이드 재단을 발족시켜, 음악교육으로까지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2005년 8월21일, 세계인은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를 주목했다. 폭탄테러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 서동시집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운명’의 첫 네 음은 그래서 더욱더 극적이었다. 닫힌 장벽, 닫힌 마음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바렌보임은 말했다. “음악이 평화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됩니다.”

6년 뒤 오늘, 서동시집은 임진각에 선다. 이번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다. “…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 머무는 곳에서, 모든 이여 포옹하라. …” 고맙고 또 부끄럽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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