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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24 19:20 수정 : 2011.10.24 19:20

서울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즐겨 찾던 명소였다. 소와 폭포 그리고 그 위에 걸린 돌다리가 절경인데다 경복궁 서쪽마을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평지와 산의 기온 차에 의해 안개가 홀연히 끼고 걷히면서 선경을 맛볼 수 있어 일찍이 왕족인 안평대군과 효령대군이 그곳에 터잡고 살았다. 조선 후기에는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의 소재로 등장한다.

“고개 든 붕새 날갯죽지 돌아보는 듯/ 골골이 샘 솟아 물마다 제각각/ 한데 합쳐 수성동이러니 다투어 솟구치고/ 절벽 위 큰 다리는 자칫 생사 가른다네.”

시인 박윤묵(1771~1849)은 종종 그곳을 찾아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장마 뒤에는 동지 서넛과 술동이를 지고 올라 산을 찢고 절벽을 뒤엎을 기세로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만 마리 말이 달리는 듯하고 벼락과 천둥이 폭발하는 듯한 장관을 보며 즐긴 일화를 전한다. “골짝길 몇 발자국 발밑에서 우레 소리/ 산안개 몸을 감싸니 한낮에도 밤인 듯/ 깨끗한 이끼 자리 깔아 무엇하리 둥근 소나무는 기와를 얹은 듯…” 완당 김정희(1786 ~1856) 역시 그곳에서 지은 시 한 편을 남겼다.

그 아름다웠던 계곡은 1960년대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콘크리트 옹벽 아래로 사라졌다.

최근 서울시에서 계곡을 복원한다는 갸륵한 발상에 따라 옛 수성동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9개 동의 아파트가 철거된 현재, 계곡 양쪽의 암반이 보이고 아파트 그늘에 가려졌던 돌다리 ‘기린교’가 햇빛을 쐬게 됐다. 하지만 등산로와 보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석축을 쌓으면서 원모습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서촌주거공간연구회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수성동이 자연 그대로 되살려져 고인과 현대인이 교유하는 곳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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