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레카] 이란 왕자와 신라 공주 / 임종업 |
이슬람과의 첫 교류는 신라 헌강왕 때인 880년쯤으로 친다.
<삼국사기>에 ‘헌강왕 5년 3월에 왕이 동쪽 지방을 순행할 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나타나 가무를 하는데, 그 얼굴과 옷차림이 해괴해 산해의 정령이라 하였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삼국유사>는 그들의 상륙 지점이 울산이며, 그 가운데 한 명이 처용임을 밝힌다. 실크로드 학자 정수일 박사는 이를 아랍인의 도래로 본다. 처용이 서역인과 흡사한 외양이며 ‘황소의 난’이 끝나는 때 등장한 점에서 그렇다. 신라와 함께 동아시아 해상교역을 장악한 이슬람 상인들이 황소의 난 때 벌어진 외국인 집단학살을 피해 신라로 피난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록을 200년 이상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존재가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이 담겨 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청아)에서 그 내용을 소개한다.
때는 640년 무렵. 아랍의 침공은 받은 사산조 페르시아 황제 야즈데기르드 3세는 아들을 중국으로 피신시켜 항쟁하도록 한다. 중국으로 간 페르시아인들은 현지의 정정 불안으로 아비틴 왕자의 인솔 아래 신라로 재망명한다. 신라왕 타이후르는 이들을 후대한다. 아비틴은 타이후르를 도와 신라를 침략한 중국을 물리치고 공주 프라랑과 결혼한다. 아비틴은 바닷길로 귀국하던 중 중국인에게 붙잡혀 처형되고, 공주 프라랑이 낳은 아기는 자라서 아랍인 침략자를 퇴치한다.
이 교수는 “800쪽 중 반 이상이 신라가 배경인 이 영웅 서사시에는 지리, 여자, 군대, 궁정생활 등 신라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담겨 있다”며 “곧이곧대로 역사자료는 아니어도 고고학, 민속학,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할 유용한 길잡이”라고 평가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