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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중독 / 함석진 |
살아 있는 것들이 뭔가에 죽어라고 몰입하는 것을 우린 중독이라 부른다. 그 말 속엔 이미 ‘치명’(致命)이 깔려 있다. 로메추사(Lomechusa)란 딱정벌레가 있다. 개미의 한 종류는 이 벌레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달콤한 액체를 얻는다. 개미는 그 맛의 덫을 벗어나지 못한다. 로메추사가 자기 배를 삼키고 있는 동안에도 머리는 계속 액체가 나오는 로메추사의 배를 핥는다.
참새를 닮은 황여새란 새가 있다. 북미에선 날씨가 추워지면 땅바닥에 떨어져 죽은 이 새가 무더기로 발견되곤 했다. 부검을 해보니 사인은 급성간질환이었다.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가목 열매는 오랫동안 나무에 매달려 발효가 됐고, 새들은 그 나무를 찾아 즐겨 알코올을 섭취해왔던 것이다. (신디 엥겔, <살아 있는 야생>)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자연에서 중독은 그리 흔한 사건이 아니다. 자연의 독은 본디 하라는 독이 아니고 하지 말라는 독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냄새 고약하고 맛이 쓴 약물을 몸 안에 둔 것은 초식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것을 먹은 동물도 구토나 설사를 일으켜 제 몸을 보호한다. 코카잎엔 강한 중독성 물질이 들어 있지만, 동물이 그것에 중독되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그리고 반복적으로 먹어야 한다. 그럴 일은 없다.
인간만이 스스로 치명적 중독에 중독된다. 부도덕한 세상으로부터 중독과의 공생을 강요받기도 한다. 우린 아직, 담배가 폐암과 관련은 있는 것 같은데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식의 판결이 나오는 세상에 산다. 게임 속에 끝도 없이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사게 하는 ‘중독 코드’를 잔뜩 넣어 놓고도 “중독은 아이 탓, 가정 탓”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중독이 얼마나 속수무책의 사태인지 정말 모르는 이들은 그 어떤 것에도 중독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담배든, 게임이든, 사랑이든.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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