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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중산층 붕괴 / 정재권 |
흔히 중산층은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든 심리적 기준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가구소득을 잣대로 삼아 중산층을 규정한다.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한 뒤,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소득(중위소득)의 50~150% 범위에 드는 가구를 중산층이라 부른다. 중위소득 50% 미만인 가구는 빈곤층, 150% 이상인 가구는 고소득층으로 분류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보고서를 내 중산층의 붕괴를 경고했다. 지난 1990년 75.3%였던 중산층의 비중이 2010년에 67.5%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준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졸과 고졸 사이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등 소득 양극화가 심화했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이 소득 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도 큰 이유로 꼽혔다.
중산층은 우리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1989년 <역사의 종언>을 통해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이고 영구한 승리를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조차 중산층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짓는다. 그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2012년 1·2월호)에 기고한 ‘역사의 미래’라는 글에서 최근 급격하게 진행된 중산층의 몰락으로 자유민주주의 종말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야마는 규제 철폐와 자유시장 원칙을 장려한 결과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가 발생했고, 이 위기들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인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의 통합과 유지를 위한 핵심 과제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모든 정치세력이 중산층 붕괴를 막겠다고 나설 텐데, 꼼꼼히 따지고 선택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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