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31 16:35
수정 : 2012.01.3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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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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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을 보면 월사금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제때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6학년 때는 월사금 받아오겠다며 나와 만화방을 얼씬거리다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내용이다. 1960년대 중반의 일이니, 50대 이상에겐 흔한 추억이다. <해법수학>의 최용준 천재교육 회장도 월사금을 내지 못해 초등학교 5학년 때 퇴학당했다고 한다. 의무교육에 무슨 월사금? 수업료가 아니라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학부모의 자발적 지원 명목으로 설치된 기성회비였다.
1993년 4월 한양대 총학생회는 전무후무한 기성회 총회란 걸 열었다. 회원인 학부모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참석한 학생이 1만2000여명 가운데 7000여명이나 됐다. 총회는 기성회비 75억원을 학교는 반환하라고 결의했다. 학교는 거부할 수 없어 2학기 등록금을 2~3% 삭감하는 것으로 절충했다. 학교가 관행대로 등록금에 포함된 기성회비를 18.5%나 올려 받은 게 화근이었다.
1999년엔 일부 사립대생들이 기성회비 50만~60만원을 뺀 등록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방식으로 기성회비 폐지운동을 벌였다. 당시 법원은 오랜 관행이었다는 엉뚱한 이유로 학교 쪽의 일방적인 인상과 징수를 정당화했다. 사립대는 기성회비 말썽을 없애려 그해부터 아예 학교회계로 편입시켜 징수했다.
당시 기성회비는 물론 등록금 액수 자체가 작았던 국공립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이후 기성회비를 무작정 올리다가(2009년 현재 등록금의 86.9%) 학생들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반환 판결을 받았다. 기성회는 후원회, 사친회 등을 거쳐 1963년부터 기성회가 되었다. 이후 초·중·고교는 학교육성회·학부모회로 바뀌었고, 대학은 기성회를 유지했다. 하지만 유령조직으로서의 그 성격은 같았다. 이젠 없앨 때도 됐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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