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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4 19:11 수정 : 2012.02.14 19:11

연초부터 흑룡의 해라고 떠들썩했다. 임금, 대통령 등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용에, 고귀함을 뜻하는 흑색까지 더해졌으니 호사가의 입에 오를 만했다. 그러나 관심사는 여의주(권력)를 물고 승천하는 신화 속 용이었을 뿐, 현실 속에 용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는 논외였다.

지금도 나일강 삼각주에선 해마다 토지 1㏊당 2500t의 기름진 분변토를 토해낸다는, 그래서 클레오파트라는 한마디로 ‘신성하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의 창자라 칭송했던 생명. 온갖 천대와 멸시에도 오로지 만가지 이로움뿐 단 하나의 해도 끼치지 않는 덕성을 기려 옛사람이 토룡이라 이름한 지렁이다.

지구상에 1800여종이 서식하고 한국엔 60여종이 있으며, 나뭇잎·풀·쓰레기 등 버려진 유기물을 하루에 제 몸무게만큼 먹어치우는 청소부다. 소화 과정에서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한 뒤 일반 흙보다 질소 5배, 칼슘 2배, 마그네슘 2.5배, 인 7배, 칼륨 7배가 더 많은 분변토를 내놓아 메마른 토양을 기름진 땅으로 바꾼다. 기어다니는 굴은 토양에 공기와 수분을 제공하는 통로가 된다. 제 몸은 두더지나 뱀에게 내줄 뿐 아니라, 인간에겐 경락을 잘 통하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며, 간 기능을 향상시키는 성질로 말미암아 강장보양제뿐 아니라 30여종의 질병 치료제로도 이용된다. 지금도 혈전으로 인한 각종 경색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

일전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20㎞ 떨어진 지역 토양 속 지렁이에서 1㎏당 2만베크렐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고 한다. 식용 육류의 기준치는 500베크렐이니 사실상 방사능 덩어리다. 방사능 청소까지 도맡고 있는 셈이다. 헌신의 용상에 오를 만하다. 이 땅의 토룡인 서민들, 양대 선거에서 권력과 가진자의 적폐를 일소해, 진정한 토룡의 해를 이루길 꿈꾼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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