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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6 19:16 수정 : 2012.02.26 19:16

가와무라 다카시 일본 나고야 시장이 며칠 전 난징 대학살 자체를 부인했다. “전투행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른바 학살은 없었다.” 그 근거가 황당하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1945년 종전 당시 난징에 있었는데 그곳 주민들이 (아버지를) 잘 대해 줬다. 학살 같은 게 있었다면 그랬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는 “목격자가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확신범’인 가와무라는 그날 중국 난징 공산당 시위원회 상무위원 등 8명이 찾아온 자리에서도 그런 신념을 피력해 난리가 났다. <인민일보> 등이 비판하고 충칭과 시안, 상하이 여행사들이 나고야행 관광 취소를 권고하거나 업무를 중단했다. 난징은 30여년 맺어온 나고야와의 우호관계까지 단절해버렸다. 그런데도 발언 다음날 나고야 시청에 걸려온 전화나 전자메일 64통 가운데 42통은 시장이 잘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사흘 뒤 가와무라 시장은 “뒤에서 말하는 것보다 정정당당하게” 말하는 게 좋다며 발언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1937년, 그 6년 전의 만주침략에 이어 중원침략(중일전쟁)에 나선 일본군은 12월 난징을 점령하고 중국군과 민간인을 무차별 살육했다. 그 수가 중국 군인 8만을 포함해 최대 30여만에 이른다는 설이 있고, 한편에선(주로 일본이지만) 수천, 수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나고야 시장도 많은 중국인들이 그때 죽임을 당했다는 건 인정한다. 다만 전투행위 중의 학살은 학살이 아니라는 이상한 논법을 편다. 그 전투행위란 게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 아닌가.

증거를 대봐! 식의 뒤틀린 심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고 동학군과 의병 대학살을 학살로 인정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논리의 연장이다. 동아시아 불안정의 근원인 일본의 과거사 불감증. 한국과 중국은 거기에 함께 맞설 역사적 동지일 수밖에 없다.

한승동 논설위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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