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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봄 / 함석진 |
봄은 기척으로 온다지만 도시인에겐 예외다. 마비된 감각은 그 낌새를 알아차릴 재간도 여유도 없다. 그들에게 봄은 텔레비전 뉴스 휴일풍경으로 온다. 봄은 본디 마음으로 오는 것인데, 너나없이 죽기 살기로 질주하는 이 피로한 사회에서 시청하는 것이 아닌 봄이 봄을 이룰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곽재구 시인은 이맘때를 “산너머 마을에 홍매화 필 적이면 돌각담 비집고 스며드는 샛바람 한 올에도 연분홍 꽃향기가 꿈결 같을 때”라고 했다. 또 누군가에게 봄은 이렇다.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 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최윤진 <봄>)
그곳에 가면 봄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고향 마을에서 가까워 자주 갔던 섬진강 매화는 올해 못 볼지도 모르겠다. 17일 시작된 매화축제를 광양시는 올해부터 국제대회로 연다고 한다. 하늘엔 애드벌룬 개수가 늘고, 스피커 볼륨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진촬영대회나 체험행사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도시인이 봄 근처에라도 가려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상춘객’이 될 도리밖에 없지만, 대회나 행사로 봄을 맞고 싶지는 않다. 꽃도 사람이 싫을 것이다.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한 독일의 심리학자 구스타프 페히너는 이렇게 전한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목소리로 서로를 찾듯이 꽃들은 향기로 서로를 분간하며 대화한다. 우아하다. 인간의 말이나 숨결은 사랑하는 연인을 제외하고는 꽃만큼 미묘한 감정과 좋은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 법정은 침묵으로 자연과 통하라고 했다. “내 속뜰에서 맑은 수액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난다. 하루 스물네시간 중 맑고 잔잔한 이런 여백이 없다면 내 삶은 탄력을 잃고 이내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산수유며 홍매화며 좀 남아 있을 때 행사가 끝나주길 바라지만 안 그래도 좋다. 행사 없이 꽃이 지천인 곳은 많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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