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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이디오테스 / 정영무 |
물건을 살 때 우리는 꼼꼼히 따져본 뒤 선택을 한다. 그러나 평균적인 유권자는 후보의 자질, 공약, 경력, 친우관계 등 모든 배경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이러한 유권자의 무지는 경험적으로 확인되는데 이를 합리적 무지라고 한다.
유용한 정보를 얻는 데는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어떤 경우 그 정보가 가져다주는 혜택보다 정보를 얻으려고 지출하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 이럴 때 그 정보를 얻지 않고 차라리 무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다. 선거 무관심도 이처럼 각자의 합리적 판단에 따른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이 바쁘거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 있다. 또 시간을 들여 정보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한 표가 선거 결과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유권자의 합리적 무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선거 때마다 허구적 구호정치가 횡행하는 이유도 후보나 정당이 지지를 얻기 위해 자세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입법이 늘어날 수 있다.
바보·백치라는 뜻의 영어 낱말 이디엇(idiot)은 이디오테스(idiote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원래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들은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적 능력을 자유인의 전제로 삼았다.
반값등록금으로 생활의 변화를 실감한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부재자투표 신청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개개인의 합리적 무지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합리적 무지를 낳는다는 것을 몸소 겪은 탓일 게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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