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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06 19:17 수정 : 2012.05.06 19:17

동해라는 이름은 우리의 삶과 인연이 깊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만 봐도 그 끈적끈적함을 알 수 있다. 고문서 전문가인 이상태 국제문화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우리가 동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무려 2천여년 전인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동해 인식>이란 논문은 조선시대의 관찬 역사서·지리서·백과전서와 개별 학자들의 학술서·문학작품에 나타난 지식인들의 동해 인식이 어땠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가장 흔한 것은 지금과 같은 지리 관념으로서의 동해이다. 하지만 해동, 동국, 삼한처럼 한반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경우도 있고, 때로는 중국의 동해(우리의 서해)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였다. 흥미로운 것은 동해가 국가의 정식 제사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고려시대 이래 동해 신을 모시는 사당이 양양에 있었는데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남해·서해와 함께 제사로 편입됐다고 한다. 그만큼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동해가 일본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29년부터다. 국제수로기구(IHO)가 처음으로 세계지명을 표준화할 당시,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탓에 일본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된 결과다. 이런 식민지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말 모나코에서 열린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동해·일본해 병기론의 한국과 일본해 단독 표기론의 일본이 맞붙었다. 투표 결과 일본의 제안이 반대 4, 기권 62, 찬성 1로 부결됐다. 우리의 병기 주장도 관철되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것은 일본의 단독 표기론에 찬성한 나라가 일본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동해 찾기의 길은 험난하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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