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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04 19:16 수정 : 2012.06.04 19:16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스코키라는 작은 마을은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유대인이고 그중에는 나치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1977년 신나치주의자들이 이곳에서 나치 복장으로 반유대인 시위를 하겠다고 나섰다. 주민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당국은 집회 개최를 불허했고, 이 문제는 법정소송으로 번졌다. 다음해 1월 일리노이주 대법원은 뜻밖에도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집회를 허가해야 한다”며 신나치주의자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결정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제러미 월드런 뉴욕대 교수는 <증오 연설의 해악>(The Harm in Hate Speech)이라는 책을 펴내 그 결정을 호되게 비판했다. 월드런 교수는 “인종, 종교, 성별 등의 편견에 기초한 ‘증오 연설’은 법적으로 규제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법조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표현의 자유 옹호 쪽으로 기울어 있는 듯하다. 지난해 3월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자 전사자 장례식장 부근에서 동성애 반대 시위를 벌이려는 것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8 대 1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좋은 예다. 미국 법원의 이런 기류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 열풍에 사법부가 제구실을 못한 데 대한 반성도 한몫하고 있다고 한다.

신나치주의자들은 대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스코키에서 행진을 벌이지는 않았다. 애초 시위 장소로 계획했던 시카고 쪽에서 25만달러 보험금 예치라는 집회 조건을 철회함에 따라 시카고에서 행사를 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코키에는 ‘홀로코스트 박물관 겸 교육센터’가 건설됐다. 나름 행복한 결말이었던 셈이다. 종북주의 논란에다 임수경 의원의 막말 파문, 대법원 구성의 보수화 등 세상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요즘 곱씹어볼 만한 사건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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