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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금성 일식의 애환 / 이근영 |
샛별(금성)이 태양면을 지나는 금성 일식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유명한 ‘케플러 법칙’을 이용해 수성과 금성 일식을 최초로 예견한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는 1631년 금성 일식을 1년 앞두고 사망했다. 프랑스 물리·천문학자 피에르 가상디(1592~1655)는 케플러의 ‘예언’대로 수성 일식을 최초로 관측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한 달 뒤에 일어난 금성 일식은 볼 수가 없었다. 프랑스 지역에서는 해가 뜨기 50분 전에 이미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해버렸다.
핼리혜성으로 잘 알려진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1656~1742)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수성이나 금성을 관찰할 때 생기는 시차를 이용하면 태양까지 거리를 정확하게 잴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이용한 지구-태양 거리 측정법을 제안했다. 핼리는 1761년 금성 일식을 19년 앞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금성이 빚은 기구한 운명에서 프랑스 천문학자 기욤 르장티(1725~1792)를 능가할 예는 없다. 1761년 금성 일식에는 각국의 관심이 고조돼 많은 과학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관측 여행을 떠났다. 르장티는 인도의 프랑스 식민지로 향했는데 도중에 영국군이 식민지를 점령해 다른 곳으로 뱃길을 돌려야 했다. 바다 위에서 맞은 금성 일식은 배가 흔들려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다. 그새 프랑스가 식민지를 되찾아 인도로 간 르장티는 8년 뒤 1769년의 금성 일식을 기다렸다. 6월4일 드디어 날이 밝았지만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구름은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하는 3시간14분7초 동안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11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자신은 이미 사망처리가 되고 아내는 재혼을 했으며 재산은 친척들이 다 써버렸다. 그의 불행은 <금성 일면통과>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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