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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17 19:12 수정 : 2012.06.17 19:12

1987년 1월15일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루 전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받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며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했다. 배석한 5차장 박처원은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검 결과 고문이 확인돼 조한경 등 경찰관 2명이 구속됐다.

얼마 뒤 수사검사 안상수는 조한경한테서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검사 출신으로 안기부로 파견 가 있던 대학 동창 ‘ㅈ단장’에게서 “정권이 걸린 일”이라며 덮기를 요구받았다. 몇달을 끄는 사이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은폐 사실을 먼저 폭로했다. 경찰 3명이 추가 구속되고 돈으로 입막음을 시도했던 박처원 등 치안본부 간부 3명도 구속됐다. 다음해 1월엔 강민창까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관계기관대책회의’까지 열며 사건 은폐를 주도한 청와대와 검찰, 안기부의 고위층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그로부터 25년 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보고 “박종철 사건 당시 ‘탁 치니 억 했다’는 수사 결과가 연상된다”고 트위터에 썼다.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발전했으나 수사기관은 30년 전 그대로”라고도 했다.

두 사건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감찰기관이란 차이는 있지만 모두 권력기관이 저질렀고, 엄청난 불법행위 뒤 돈까지 동원해 이를 덮으려는 조직적인 은폐·조작이 자행된데다 검찰이 재수사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까지 닮은 데가 적잖다. 박종철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사실상 은폐·조작을 방조한 검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검찰은 25년 전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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