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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지적 설계 / 곽병찬 |
자동차는 볼트, 너트 하나까지 분해할 수 있다. 재조립해도 기능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면 인간의 눈도 이렇게 분해했다가 재조립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바탕을 두고 생화학자 마이클 비히가 제기한 것이 지적설계론이다. 환원 불가능한 고도의 복잡성으로 미루어, 눈은 진화 과정에서 세포의 우연한 조합으로 생성됐다기보다는 어떤 정교한 설계에 따라 형성됐다고 보는 편이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의 약점을 파고들어 설계자를 입증하려 한다는 점에서 맹목적인 창조론과는 다르다.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도 과학자라면 지구의 나이가 기껏해야 1만년 정도라는 구약성경의 추론을 지지하기엔 염치가 없다. 모든 생명체가 태초부터 지금 모습 그대로라는 주장이나,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의 존재를 믿기도 힘들다. 그래서 지적설계론자들은 창조론과 달리 늙은 지구론(45억여년이 된 지구), 유기체의 변이와 공통조상론 등을 수용한다.
다만 분자 단위로 쪼갤 수도 없고, 다시 조립한다 해도 본래의 기능을 갖도록 할 수 없는 생명체의 복잡성과 환원불가능성에 근거해 어떤 지적 설계자를 상정한다. 유전자 배열이 하나만 달라도 기능을 못하는 이런 생명체가 우연적인 진화로 발현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증이 이른바 설계 추론이다. 비히 외에 법학자 필립 존슨, 수학자 윌리엄 뎀스키 등이 설계 추론을 확장시켰고, 창조론의 과학적 대안으로 한때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과학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또 신의 존재를 유추할 뿐 그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과 신학 양쪽에서 외면받는 까닭이다. 착잡한 것은 지적설계론의 이런 고민조차 수용하지 않고, 유대인 신화를 과학이라고 맹신하는 한국 창조론자들의 지적 게으름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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