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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힉스와 윔프 / 이근영 |
기원전 5세기께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물질의 근원이 되는 요소로 도입한 원자(아토모스) 개념은 2000년이 지난 19세기 초 영국 화학자 존 돌턴에 의해 ‘모든 물질은 유한한 수의 원자(아톰)로 이뤄졌다’는 원자론으로 부활했다. 아토모스는 ‘나뉜다’는 말(tomos)에 부정어(a-)를 붙인 합성어다.
그러나 1890년대 영국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이 전자를 발견해 원자는 ‘가장 작으면서 더 이상 나뉘지 않는’ 근원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20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우주선 실험과 가속기를 활용해 앞다퉈 새로운 입자들의 존재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미국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Z보손의 존재를 예견하면서 인간이 생각하는 마지막 입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Z를 이름에 넣었지만,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속기의 성능은 향상됐고 입자 발견 러시는 계속됐다.
“전자, 원자핵, 양성자, 중성자, 파이온, 케이온, 하이퍼론, 쿼크, 뮤온, 타우, 중성미자, Z보손, W보손, 글루온, 광자, 메손, 바리온, 하드론, 렙톤, 보손, 페르미온, 힉스….” 과학자들이 입자와 이론의 이름에 즐겨 붙이던 그리스 문자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20세기 중엽 한 학술회의 뒤 강연 내용에 대해 묻는 젊은 학자에게 “내가 저 입자들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었으면 식물학자가 됐을 걸세”라고 농하기도 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이해시켜줄 수 있는 표준모형이 ‘힉스’의 발견으로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표준모형이 설명할 수 있는 물질은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암흑물질의 정체는 ‘윔프’(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라 불린다.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 지하에도 윔프 검출기가 있다. 과학자들은 아직 배가 고프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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