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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폭염과 전쟁 / 이근영 |
날씨는 많은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1950년 8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맞서던 유엔군은 방어 위주에서 공세적인 작전으로 바꾸기로 한다. 미군 25사단은 병력 2만4000여명과 전차 101대로 구성된 부대를 편성하고 사단장의 이름을 따 ‘킨 특수임무부대’라 이름붙였다. 미군은 새벽을 틈타 공격을 시작했지만 한낮이 되면서 최고 38도까지 오르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습도까지 70%를 넘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쟁사학자인 존 프레더릭 찰스 풀러(1878~1966)는 “한국전쟁 초기 미군은 적의 총탄이 아닌 더위로 많은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했다.
사라센제국의 술탄 살라딘(1137~1193)은 더위를 이용해 십자군과의 지하드(성전)를 승리로 이끌었다. 1187년 6월 살라딘이 이끄는 무슬림군은 하틴(지금의 이스라엘 티베리아스) 전투에서 물을 충분히 챙긴 뒤 태양을 등지고 한낮에 공격을 감행하는 전술을 펼쳤다. 뜨거운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싸우던 십자군은 열파에 지쳐가기 시작하고 물마저 동이 나자 급격히 무너졌다. 전투가 벌어진 갈릴리 지방은 6~9월이 건기로 비는 한방울도 안 오고 낮 최고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간데다 습도마저 평균 65%로 높았다.
1798년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는 사막에서 번번이 신기루에 속아 고생을 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 자동차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전방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마치 물구덩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전방에서 다가오는 자동차가 비쳐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뜨겁게 달궈진 대지로 인해 몇개의 온도가 다른 공기층이 생겨 빛이 굴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현상이다. 나폴레옹과 함께 종군하던 수학자 가스파르 몽주(1746~1818)의 이런 과학적 분석을 기려 ‘몽주 현상’이라 부른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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