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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펜싱, 중세의 매혹 / 노형석 |
지난 주말 한국인들은 열대야의 밤을, 런던올림픽 펜싱의 승전보로 지새웠다. 100번째 한국의 금메달은 우랄 기병들의 칼싸움에서 유래했다는 사브르 종목 남자대표팀의 몫이었다. 신아람 오심 파문과 ‘스스로 미친 것 같았다’는 김지연의 깜짝 우승, 남녀 대표팀의 열전 덕에 펜싱의 농익은 아름다움을 우리는 어느 때보다 상세히 엿볼 수 있었다.
펜싱은 유럽 근대문명의 태반을 만든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가 축적해온 문화유산이다. 펜싱의 매혹은 도저한 탐미성에서 비롯된다. ‘찌르고 막는다’는 단순한 행위는, 세련되고 복잡한 제약 속에서만 작동한다. 다른 격투기와 달리 펜싱은 직접적 신체 접촉을 불허한다. 오직 칼 든 손과 민첩한 몸짓으로 싸워야 한다. 뒷발은 절대 앞발보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며, 일정한 보폭으로 종종걸음치듯 가야 하며, 전진도 후퇴도 매무새를 강조한다. 검객들 스텝은 미뉴엣 무용의 스텝처럼 비친다. 암전된 화면 같은 공간 속에서 심판들의 ‘알레’(시작) ‘알트’(중단) 구령이 울려퍼지는 게임은 마치 성전의 예식 같기도 하다.
이런 우아한 펜싱 규범은 중근세 유럽 기사도 문화의 잔상이다. 16세기부터 전투에 화약과 경기병이 등장하자, 중무장 기사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고, 칼 두께도 길고 가늘어졌다. 이 검과 전투양식 변화가 유럽 귀족 사회에 새 유행을 낳으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각기 다른 유파 검법으로 19세기까지 발전시킨 것이 뿌리다.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통찰하듯 중세 기사도가 한때의 ‘아름다운 시절을 꿈꾸던’ 문화놀이로 변신하면서 더욱 다듬어진 교양 스포츠인 것이다. 1회부터 올림픽 종목이 된 것도 올림픽 산파였던 귀족 쿠베르탱이 열렬한 펜싱 숭배자였기 때문이었다. 중세말 기사도의 그림자 얼비치는 펜싱의 문화사에 심취해볼 만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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