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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대통령의 표지석 / 김종구 |
새로운 건물이나 도로가 건설될 때마다 대통령의 친필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표지석 중 시기가 상대적으로 이른 것은 ‘무악재’ 비다. 1966년 11월 서울 홍제동~독립문 구간 2차선 도로를 6차선으로 확장한 것을 기념해 세운 표지석이다. 1971년에는 태릉국제사격장을 건립하면서 ‘백발백중’이라고 쓰인 표지석을 세웠는데 그해 10월 열린 제2회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반드시 북한 선수를 제압하라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1989년 민족중흥회가 펴낸 박 전 대통령의 휘호집 <위대한 생애>에 따르면 집권 18년 동안 그가 남긴 글씨는 1200여점에 이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앞에 ‘국민독서교육의 전당’이라는 글씨를 남겼고, 서울 예술의전당이 임기 내에 완공되지 않자 ‘중간 준공식’을 치르면서까지 ‘문화예술의 창달’이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예술의전당 완공 후 오페라극장 앞 바위에 ‘예술창조의 샘터, 문화국가의 터전’이라는 휘호를 새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거제의 해금강 휘호비(‘천하절경해금강’), 전남 목포시 종각(‘새 천년의 종’) 등에 친필을 남긴 것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친필 표지석을 세운 것 역시 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짐작이지만 이 대통령은 혹시 신라 진흥왕이 자신의 영토를 둘러보고 세운 ‘진흥왕순수비’를 마음속에 상정했는지도 모른다. 업적 과시도 좋고 과거 왕과의 동일화도 좋지만 요즘 청와대의 모습을 보면 확고한 전략도 없이 표지석 세우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아 씁쓸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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