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레카] 하시즘 / 오태규 |
“위안부 강제 연행의 증거를 내놔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던진 한마디가 일본 정치권의 국수주의 경쟁에 불을 댕겼다. 자민당 정권 때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는 일본군 위안부의 정부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뿐 아니라, 역사 교과서 검정 때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약속한 82년의 미야지마 기이치 관방장관 담화(이른바 ‘근린조항’),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총체적 사과와 반성을 밝힌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를 모조리 수정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노다 요시히코 민주당 내각의 마쓰바라 진 공안위원장도 고노 담화 수정론에 가세했다. 일본 정치에서 차지하는 하시모토의 상징성과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시모토의 인기 기반은 일본 사회의 좌절감과 이를 치유하지 못하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다. 그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독재이며 일본의 가장 한심한 점은 단독으로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외친다. 당연히 평화헌법도 고치고 핵무장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원전 정책 정도만 빼면,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한 극우보수의 덩어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이름과 파시즘을 조합해 만든 ‘하시즘’이란 용어가 그의 정체성을 잘 대변한다.
그가 이끌고 있는 지역 정당 오사카유신회가 어제 ‘일본유신회’로 이름을 바꿔 재출범했다. 11월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에 참여해 정권을 잡겠다는 포석이다. 지금의 기세로 보면 단독집권은 어려워도 자민당 등과 연립정권을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야 불신 속에서 제3 세력을 대표하는 안철수씨가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다. 같은 제3 후보지만 독재와 소통으로 가는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