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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15 19:20 수정 : 2012.10.15 19:20

키가 12m를 훌쩍 넘는 거인 부처님이 야단법석에 나오신다. 입을 천으로 가린 사내들이 절집 안에서 둘둘 말린 부처의 몸을 모셔와 법석 위에 걸고 펴기 시작했다. 오색 연꽃 피어나는가 싶더니, 석가의 눈길은 어느새 우리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용왕 용녀가 그의 곁을 지키고 선 괘불탱 그림. 그 아래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은 일년 농사로 지은 꿀떡, 햅쌀, 해콩 등을 차려 만물공양을 한다. 자기네 마음과 세상의 평화를 빌며 맑은 마음 담아낸 기도 소리가 빛과 향기를 내뿜는다. 지난 13일 낮 한반도 남쪽 끝자락의 달마산 미황사에서 치러진 괘불재는 대동세상의 풍경 같았다. 너와 나, 분별이 따로 없는 한몸의 세상이 부처의 눈길 아래 펼쳐진 잔치판이었다.

불교미술사에서 괘불은 절집 바깥에 내거는 큰 불상 그림이다. 본디 티베트의 밀교 그림인 ‘탕카’에서 유래했지만, 이 땅에서는 16~17세기 임진왜란 등 대전란을 계기로 일년 중 망자를 위로하거나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특별한 날의 야단법석에 등장하곤 했다. 절집 안에서 대중과 만났던 부처가 모처럼 세상 밖에 나와 중생과 눈길 마주하며 풍성한 민중 연희와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가 괘불재인 것이다.

해남 미황사 괘불은 영험하기로 이름높다. 한번 보면 소원이 풀리고, 세번 보면 극락왕생하며, 가뭄 때 펼치면 비를 내려준다고 한다. 1727년 그려진 이래 300년 가까이 인근 바다에서 고기 잡다 죽은 숱한 영령들을 다독거려준 어머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어진 저녁 산사음악회에서 대중들은 큰 부처를 본 기쁨을 해남강강술래와 양말타령 가락 등으로 흥겹게 풀었다. 괘불재는 끝났어도 미황사와 달마산 곳곳에는 들국화와 억새풀, 층꽃나무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절을 아끼는 이들의 숨결과 함께 새록거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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