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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일본 공산당 / 곽병찬 |
18일 가사이 아키라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예방했다. 일본 중·참의원 의원 중에선 처음이었다. 조선의궤 반환, 재일한국인 지위 정상화, 일본 정부의 과거사 사과·반성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개인 차원이 아니라 실은 그가 소속한 일본 공산당의 방침 속에서 이뤄진 일들이다. 일본의 최장수 정당이 공산당(올해로 창립 90돌)이다. 사유재산 불허를 금지하고, 폭력혁명 등 기존의 노선을 거부하는 별종이다. 90년 동안 무수한 내부갈등, 모순, 부침을 겪었지만, 다음 3가지 원칙 아래 이를 극복했다. 풀뿌리 정치. “국민의 고난을 덜고 사회를 보다 낫게 한다”는 창당 정신에 따라 주민 속으로 파고들었다. 간토대지진 때 학살을 무릅쓰고 이재민 돕기에 나섰던 것처럼,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때는 방사능 오염이 가장 심한 핫스폿 지역에서 조사·구호 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은 전국의 2만여개 지부로 나타났다.
자주의 원칙. 1949년 총선에서 약진과 함께 소련 공산당은 중국식 무장투쟁을 종용했고, 이 때문에 격렬한 내분이 일어났다. 1952년 총선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결국 1955년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1957년 당대회는 자주의 원칙을 확립했다. 셋째는 자립의 원칙. 일체의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는다. 오로지 당비와 기관지 판매 등 수익사업 수입과 개인 모금에 의해 당을 운영한다.
1950년대 초의 궤멸적 위기, 1970년대의 내분, 1980년대 후반 공산권 붕괴에 따른 위기 등은 이런 원칙 속에서 극복됐다. 1961년 폭력혁명 노선 폐기, 1973년 민주혁명 강령, 2000년엔 전위정당 성격 전환, 2004년 민주개혁 강령 등 유연한 변화는 이런 원칙에서 나왔다. 인물에 따른 청산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 크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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