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레카] 해관육조 / 정영무 |
임기를 1년 남긴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차기 대통령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는 “후임 대통령에게 사표를 쓰면 임기직이기 때문에 사표를 수리하기 힘들 것이고, 안 쓰면 새 진영이 출발하는 데 모양이 안 맞을 것”이라고 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선비의 벼슬살이하는 법은 마땅히 버릴 기(棄)를 벽에 써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했다. 언제든지 벼슬을 버릴 수 있으니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람임을 알린 뒤라야 제대로 목민관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밀하고 경탄스럽지 않은 곳이 없는 목민심서에서도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해관육조(解官六條)편이다. ‘벼슬살이 머슴살이’라는 말이 있듯, 주인이 그만두라면 언제라도 그만두는 것이 벼슬살이다. 때가 오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평소 장부를 잘 정리해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게 첫째 체대(遞代)다. 천박한 수령은 관아를 자기 집으로 알고 오랫동안 누리려 하다가 교체 통보가 오면 큰 보물이라도 잃은 듯하고, 현명한 수령은 관아를 여관으로 여겨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았다가 훌쩍 날아가듯 한다고 비유했다.
둘째가 떠나는 사람의 이삿짐은 가벼워야 한다는 귀장(歸裝)이다. “맑은 선비의 돌아가는 행장은 초연히 깨끗해서 낡은 수레 야윈 말에… 상자·농 같은 것은 새로 만든 게 없고 임지에서 생산되는 비단이나 주옥이 없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새로운 물건이 없고 청빈한 모습이 옛날과 같은 것을 으뜸 귀장으로 쳤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해 9월 재판관 퇴임 뒤에도 어차피 돌아올 거라며 개인 물품을 헌재 창고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아름답지 못한 해관의 으뜸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