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7 19:50
수정 : 2013.02.27 19:50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1998년 2월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이 손질됐다. 원래 이 조항의 내용은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거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이 포함되는 것으로 법이 고쳐졌다. 이른바 정리해고 요건의 완화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 국가경제를 회복시킨다는 게 명분이었다.
그 뒤 법원의 판결도 달라졌다. 대법원은 1989년에는 “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정리해고 요건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002년엔 “현재뿐 아니라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기업이 큰 법적 부담 없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길이 넓어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엊그제 국회의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정리해고 요건의 강화를 권고했다. 근로기준법 24조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로 구체화하라는 내용이다.
인권위는 쌍용자동차에서 많은 해고노동자가 사망하고, 정리해고자들이 커다란 심리적·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권고의 이유로 들었다. 쌍용차에선 2009년 2646명이 정리해고된 뒤 지금까지 노동자와 그 가족 24명이 생활고와 건강 악화 등으로 숨졌다. 3년이 넘는 싸움 끝에 무급휴직자 454명 등 480여명만이 3월5일 공장으로 돌아가게 됐을 뿐이다. 더 늦기 전에 무분별한 정리해고에 확실한 제동장치를 달아야 한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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