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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2 19:14 수정 : 2013.03.12 19:14

다시 한반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에 따라 고조되는 남북 충돌 위험 탓이다. 엊그제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2주년이었다. 후쿠시마의 잔해는 인류 종말의 묵시록적 경고로 남아 있다. 군사적이건 평화적 목적이건 핵 기술은 인간 생존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인류에게 기술의 적정한 수준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경제학자 슈마허는 1955년 방문한 미얀마에서, 빈곤 이하의 소득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주민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경제학적 문제들에 대한 정해진 해결책이란 없다. 그것은 특정 장소와 시간, 특정한 환경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각성은 간디 사상과 결합하면서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낳았다. 적정기술의 원조인 ‘중간기술’ 개념을 잉태한 책이다.

제3세계에 고도화된 기술과 자본집약적 도구가 도입되면 근대적 부문은 번창하지만 전통적 부문은 몰락한다. 대중은 실업과 빈곤에 빠지고, 부는 일부 지배층과 관료 엘리트 집단에 집중된다. ‘농촌과 도시가 서로 파괴하는 과정’이다. 슈마허가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제고하는 기술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온 것이 중간기술이다. 멀리 이동하지 않고 지역공동체 안에서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지역의 자원으로 물건을 만들어 쓰고, 값싸게 세운 작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열등한 기술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진화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완결적인 체계’를 뜻하는 적정기술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일자리 확충과 생산성 제고가 함께 이루어지며,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요즘은 인류 자신을 위협하는 핵, 나노, 인지, 생명 조작 따위의 기술에 맞서는 개념으로도 쓰인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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