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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지슬 / 정영무 |
뭍으로 올라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는 제주 4·3사건 당시 동굴로 숨어들었던 서귀포 주민들의 이야기다. 슬프고 정겨운 영화에서 군인들의 세계와 마을 사람들의 세계는 너무 다르다. 양쪽을 연결하는 매개물은 지슬이며, 지슬은 산 자와 죽은 자도 하나로 이어준다. 지슬은 땅의 열매라는 지실(地實)의 제주 지역말로 감자를 뜻한다.
감자는 척박하기로 유명한 안데스 고원지대가 원산지다. 그곳 주민들의 생활 또한 비참했기에 유럽으로 전파될 때 빈자의 음식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16세기 스페인에 처음 들어온 감자는 타르투폴로, 곧 백색 송로버섯이란 이름만 그럴듯했을 뿐 식탁에 쉽게 오르지 못했다. 생김새나 땅속에서 자라는 성질 같은 요인도 작용해서 감자는 늘 처음 보급되는 곳에서 나쁜 이미지를 갖곤 했다.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속설도 널리 퍼졌다.
괴테는 신대륙에서 온 것 중에서 악마의 저주와 신의 혜택이 있는데, 전자는 담배고 후자는 감자라고 했다. 감자가 도입되면서 유럽인들은 만성적인 기근으로부터 해방됐다. 감자는 해안지대부터 해발 5000m 가까운 고산지대, 아프리카 열대기후부터 러시아의 추운 지방까지 거의 모든 지역에서 폭넓게 재배되는 작물이다. 쌀이나 밀에 비해 수분 요구량이 적고 일찍 수확할 수 있으며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4배 이상 많다.
또 다른 매력은 방역 때문에 수출입이 제한돼 그 지역에서 생산해 자체 소비할 수 있는 식량작물이라는 점이다. 예일대 그리핀 예방연구센터가 세계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7만여개 식품의 영양학적 가치를 매긴 결과 감자가 왕 중의 왕이었다. 감자는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작물로 꼽힌다. 오멸 감독은 감자가 전세계의 솔푸드여서 제목으로 삼았다는데, 영화 지슬은 감자에 대한 상찬이기도 하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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