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4.22 19:06 수정 : 2013.04.23 09:44

한국방송 드라마 ‘직장의 신’

소설이 인간을 구원해주리라 믿었던 죄르지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문제적 개인’을 이야기하던 20세기 초엔 소설이 자본주의의 총아였다. 21세기 초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의 시대엔 안방 드라마가 소설의 짐을 나눠 진다. 타락한 세계와 뼛속 깊이 불화하며 스스로 세계를 거부하고 그 바깥에 있기를 고집하는 인물. 이 문제적 개인이 안방 드라마에 나타났다. <직장의 신>의 미스 김, 김점순씨!

한국 고도성장기 수많은 여공 ‘김양’이 있었듯, 지금 비정규직 800만명 시대에 미스 김은 비정규직이다. 배우 김혜수씨의 몸을 빌려 미스 김은 말한다. “저는 그냥 호치키스(스테이플러) 심입니다. 쓰다 떨어지면 언제든 새로 갖다 쓸 수 있는 호치키스 심!”

미스 김에게 수당 없는 시간외 근무와 야근은 없다. 정해진 퇴근시간 뒤 벌어지는 팀 회식 역시 그의 업무가 아니다. ‘업무가 아니라면 회사 가족으로서 참석하라’는 팀장에겐 “저는 교회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답한다. 직장 내 친목은 인간인 정규직끼리 나누는 것이다. 이름 한번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투명인간 취급받는 비정규직에겐 해당 사항이 아니다. 정규직 전환을 제의하는 부장에겐 “회사에 속박된 노예가 될 생각이 없다”며 거절한다. 루카치의 문제적 개인은 비극적 운명일 수밖에 없는데, 미스 김의 무기는 현실을 찌르는 풍자와 저항의 언어다.

미스 김은 자신을 똥이라 한다. 현실에서 된장인 정규직과 똥인 비정규직은 출발부터 계급이 다른 탓이다. 똑같은 업무에 잡일까지 하고도 월급은 반 토막, 반의 반 토막. 그마저 보장된 앞날은 길어야 2~3년. 비정규직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호치키스 심이 되고 있다. 누군가의 코미디대로 ‘인간이 아니무니다’이다. 이런 사회를 향해 미스 김이 썩소(썩은 미소)를 날리고 있다. 허미경 책지성팀장 carme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