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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야스쿠니 문제 / 오태규 |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래 야스쿠니신사가 커다란 ‘외교 문제’로 떠오른 건 이제까지 크게 두 차례다.
첫 번째는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 때였다. 나카소네 총리는 패전 40주년이 되는 그해 8월15일, 신사를 방문해 ‘내각 총리대신 나카소네 야스히로’라고 서명하고 꽃값 3만엔을 정부 돈으로 냈다. 전후 개인이 아닌 총리 자격으로서 첫 공식 참배였다. 그러나 나카소네 총리의 도발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중국은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를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우리 정부도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을 통해 정식으로 문제를 삼았다. 결국 나카소네 총리는 다음해부터 참배를 단념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나카소네 총리 이후 11년 만인 96년 8월15일 다시 신사 참배를 강행했으나, 그것도 주변국의 반발로 단발에 그쳤다.
두 번째 야스쿠니 문제를 본격 야기한 인물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였다. 그는 총리 경선 때부터 신사 참배를 예고하더니 총리가 된 2001년부터 퇴임 때까지 내리 6번이나 참배를 강행했다. 주변국의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중국과는 고위급 교류가 중단되어 고이즈미 집권 내내 중-일 정상회담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매년 강도 높은 항의를 되풀이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신적 후예’인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3차 야스쿠니 공세를 펼치고 있다. 아직은 각료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그 자신이 ‘1차 집권 때(2006~7년)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밝힌 터여서 8월에 직접 참배할 가능성이 크다. 야스쿠니가 그들에겐 전몰자 추모시설일지 모르나 주변국엔 침략의 상징이라는 걸 외면하는 뻔뻔한 짓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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