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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미국의 보복 / 오태규 |
일본에는 미국의 눈에 난 정치인이나 정권은 보복을 당하거나 단명한다는 속설이 있다. 독자적인 원유 개발과 미국보다 앞서 중국과의 수교를 꾀했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미국발 록히드 추문 사건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매장된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마저 그의 책에서 다나카의 실각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간 증거가 부족하거나 단편적인 설명에 그쳐 큰 힘을 얻지 못했다.
일본 외무성 고위 관료 출신인 마고사키 우케루가 쓴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원제 <전후사의 정체>)는 다르다. 그는 일본 정부의 공식문서, 정치인 및 외교관들의 자서전과 증언, 언론 보도, 비화 등을 근거로 2차 대전 이후 대미 자주노선을 추구했던 일본의 정치인들이 어김없이 미국의 보복을 당했음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일본 총리 중에서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현 외부 이전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를 빼고는 대부분이 대미 추종파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 지원을 위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자위대를 파견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비롯해, 아베 신조(1차 내각), 아소 다로,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정권은 죄다 대미 추종 노선을 취했다. 아베와 아소 정권 사이에 있었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독자노선과 친미노선의 중간 정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아베 내각이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 참여를 북한에 파견하면서 미국에 사전 통고를 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는 모두 공식적으로는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미국도 실제 그랬는지는 의문이 많다. 마고사키의 공식에 비춰 보면, 공개적으로 미-일 동맹의 복원·강화를 외칠 정도로 친미 노선을 취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미국을 따돌리고 대북 독자외교를 펴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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