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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24 19:02 수정 : 2013.07.24 19:02

국가정보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공개 이후 새누리당은 사초(史草)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서 발견되지 않자 갑자기 물 만난 고기처럼 연일 사초 공세를 펴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사초라는 말을 가급적 꺼리고 있으니 언어 구사에서도 공수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급기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24일 “예전에 사초 관련 범죄는 참수로 벌했다”는 섬뜩한 말까지 했다.

황 대표의 말대로 조선시대에 사초에 대한 훼손·누설 행위는 중범죄로 엄히 다스렸다. “관련 사실을 없애고자 하여 권종(卷綜)을 훔친 자는 ‘제서(制書·국서)를 도둑질한 율(律)’로써 논죄하여 참(斬)하고, 사초를 도려내거나 긁어 없애거나 먹으로 지우는 자는 ‘제서를 찢어버린 율’로 논죄하여 참하며, 동료 관원으로서 알면서도 고하지 아니하는 자는 율에 의하여 한 등급을 감하고, 사초의 내용을 외인에게 누설하는 자는 ‘근시관(近侍官)이 중요한 기밀을 남에게 누설한 율’로써 논죄하여 참해야 한다.” 세종시대 춘추관에서 올린 이런 내용의 보고서는 세종의 윤허를 받아 조선의 기록 관리에 관한 기초 법령이 되었다. 그 뒤 중종 때는 사초 작성 과정뿐 아니라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사초를 누설해도 목을 베는 규정이 추가됐다.

황 대표의 발언은 이런 점에서 매우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의문은 국가기록원 대화록만 사초이고 국정원이 보관해온 대화록은 사초가 아니냐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사초(시정기·時政記)를 두 부 만들어 한 부는 춘추관에, 부본(副本)은 충주서고에 보관했다. 지금의 상황은 춘추관(국가기록원) 사초는 실종되고, 충주서고(국정원) 사초는 누설된 셈이다. 국가기록원 사초 증발은 그것대로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사초의 내용을 외인에게 누설한 자, 동료 관원의 비행을 고하지 아니한 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황 대표의 사초 관련 범죄 발언이 빈말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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