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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재판정의 친구 / 정영무 |
그리스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이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 곳이든 우주의 섭리를 따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 우주의 뜻은 ‘질서대로 정돈된 보석들’이다. 무욕과 평정심을 추구한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진정한 세계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권하는 마음 훈련법은 관점을 바꿔 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상상이다. 새의 시각은 위에서 아래로 거리를 두고 현실을 보는 것이다. 새의 시각으로 넓고 멀리 보면 잠시나마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대신 객관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행복과 불운이 얽히고설킨 전체의 모습이 보인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이 새의 시각으로 볼 때 비로소 명확해진다고 한다.
네로 황제를 가르친 스토아 철학자이자 시인, 정치가인 세네카는 정신 단련법으로 끔찍한 사건을 상상하는 훈련을 하곤 했다. 세네카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일에 맞설 수 있도록 영혼을 단련해야 한다”고 한다. 두려운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상상을 함으로써 두려움을 떨칠 수 있고, 막상 닥쳤을 때 담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네카 시대는 정치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 제아무리 높은 귀족이라도 하루아침에 신분이 전락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세네카 자신도 유배에 자살 명령까지 받았다. 세네카에 따르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재난은 친구와 재판정에 서는 것이다. 그는 친구와의 소송에서 지는 상상을 하라고 제안한다.
전직 국세청 차장이 씨제이그룹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탈세를 눈감아준 혐의로 구속됐다. 돈을 건넨 씨제이 임원은 대학 동기로 40년지기인데, 서로 엇갈린 진술로 진실게임을 벌이는 처지에 놓였다. 혼돈의 시대가 아닌데도 기막힌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국세청 주변의 기류가 몹시 불안정한 모양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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