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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거위털, 낙타털 / 김종구 |
중산층의 세 부담 논란을 촉발한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원점에서 재검토되게 됐다. 청와대는 애초 “고통을 느끼지 않게 거위에서 깃털을 뽑는 수준이 이번 세제 개편의 정신”(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라고 강변했으나, 털이 뽑힐 위기에 처한 거위들의 비명이 예상외로 커지자 서둘러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많은 수의 거위에서 털을 뽑기보다는 적은 수의 낙타에서 얻는 양이 많을 것”이라는 재미있는 비유도 했다.
사실 국민에게 골고루 따뜻한 옷과 이불(복지)을 제공하려면 지금보다 털(세금)이 더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그 털을 어디에서 얻느냐인데 이번 세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힘없는 거위들(근로소득자 등)한테서만 털을 뽑으려고 한 데 있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이 낙타(대기업과 부유층)의 털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낙타털은 품질도 뛰어날 뿐 아니라 낙타 1마리에서 1년 동안 얻을 수 있는 양도 2.25㎏ 정도로 풍부하다.
낙타는 털을 얻는 방식도 거위와는 사뭇 다르다. 거위는 짧은 생애 동안 4~5차례 털이 뽑히는 고통을 당한다. 반면에 낙타는 털을 깎거나 뽑지 않고 주로 털갈이 때 떨어지는 털을 수집해 얻는다. 낙타는 날씨가 더워지는 늦은 봄이 되면 6~8주 정도 털갈이를 하는데 이때 목과 갈기, 몸통 순서로 털이 뭉텅이로 빠진다. 이 털을 낙타 행상 대열의 맨 뒤를 따라가는 트레일러라는 낙타에 바구니를 매달아서 모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낙타들은 스스로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날씨가 더워져도 두꺼운 털로 더욱 몸을 꽁꽁 싸맨다. 거위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털이 뽑히는 아픔 못지않게 이런 낙타들의 모습을 목도하는 슬픔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어차피 낙타털 이야기를 꺼냈다면 지혜를 짜내 낙타의 털을 적정한 선에서 잘 깎아내는 방법을 강구하길 바란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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